본문 바로가기
인물 이야기

신이내린 천상의 목소리 '파리넬리'

by 이야기 좋아하는 남자 2020. 1. 15.

안녕하세요 여러분!  이야기 꾼입니다~~

오늘은 인물 포스팅을 올릴 예정인데요?

개인마다 다르겠지만 생소할 수도 혹은 어디서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인물입니다.

신이 내린 목소리라고 불리었던 '파리넬리'에 대해서 포스팅을 하려고 합니다.

제가 처음 이 인물을 접하게 된 순간은 학교 음악시간에 선생님이 영화로 보여주셔서 그때 처음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저에게도 생소하지만 매력 있는 인물이었기에 소개를 해보고 싶어 이렇게 이야기를 적게 되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  '파리넬리'는 누구인가?

 

'카를로 마리아 미켈란젤로 니콜라 브로스키' (파리넬리)     출처:위키백과

우리가 흔히 부르는 '파리넬리'의 본명은 따로 있습니다.  그의 본명은 상당히 깁니다.

'카를로 마리아 미켈란젤로 니콜라 브로스키' (1705년 1/24일~ 1782년 9/16일)가 그의 본명입니다.

(외국사람이라 그런지 몰라도 외우기는커녕 발음하기도 쉽지가 않네요... 제 친구 이름이었으면 이름 안 불렀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파리넬리라는 예명을 쓰게 되었을까요? 

그에게는 그를 후원해주던 나폴리의 가문 '파리나' 가문이 있었습니다.  그 가문의 이름을 따서 파리넬리라고 지었다고 합니다.

그러면 그가 어떤 일을 했길래 '신이 내린 목소리'라고 불리었을까요? (저도 가지고 싶어요. 무척이나 가지고 싶어요.)

그는 18세기에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카스트라토'였습니다. (변성기가 되기 이전에 거세한 남성 가수)

카스트라토에 대해선 다음 포스팅을 하겠지만 , 카스트라토의 인기는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습니다.

지금 한창 잘 나가는 대중스타 저리 가라 할 정도였으니까요.

그래서 수많은 소년들이 카스트라토를 지망하여 오죽하면 카스트라토를 전문으로 키워내는 학교까지 세워졌다고 합니다.


1. 파리넬리의 출생과 유년기

1705년 작곡가 '살바토레 브로스키'와 그의 아내 '카테리나 베레세' 사이에서 두 번째 아이가 태어나게 됩니다.

그의 형 '리카르도 브로스키'는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작곡가가 되었습니다.

그는 12살 때 아버지에 의해 거세를 당하게 됩니다. (이유는 카스트라토가 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리고는 당시 유명한 작곡가 '니콜라 포르포라'의 제자가 되어 실력을 향상해 나가죠.

이때 파리넬리의 성장 속도는 어마 무시했는데 1720년에 정식으로 음악 활동을 하게 되었고,

 데뷔한 지  3년 만에 포르포라의 오페라  '아델라이데'의 주연을 맡아버립니다.

결과는 성공으로 이어졌고 바로 주연급 가수로 자리매김을 하죠.


2. 본격적인 활동을 하는 파리넬리

※ 그의 목소리는 아름답고 힘이 있었으며, 기교가 상당히 풍부했다고 전해집니다.

그리고 유연한 장식음도 할 줄 알아서 많은 찬사를 얻었다고 하네요. (역시 천재는 젊을 때부터 인정을 받네요)

1726년 파르마와 밀라노를 방문하게 되었을 때엔 작곡가였던 '요한 요아킴 콴츠' 조차도 그에 대한 호의를 표했다고 하죠.

그의 본격적인 활동은 바로 런던에서 시작됩니다.

1734년 가을에 파리넬리는 포르포라의 요청으로 런던으로 가게 됩니다.  이때 포르포라가 파리넬리를 데리고 가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답니다.

당시 런던은 오페라 단 사이에 경쟁구도가 상당히 치열한 상태였는데 

'헨델이 이끌고 있는 오페라'와 그의 경쟁 단체인 '귀족 오페라'의 양극 체제였습니다. 

귀족 오페라 입장에선 외부 출신 작곡가인 헨델의 활약이 영 탐탁지 않았나 봅니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내는 것처럼 보였을 테니까요.

그래서 헨델의 오페라 단에 맞서기 위해 포르포라와 파리넬리를 스카우트를 하게  됩니다. 

 여기서 자신의 라이벌 카스트라토인 '세네지노'를 만나게 됩니다.

※ 세네지노는 헨델 오페라단이어서 자연스럽게 라이벌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둘의 사이가 적대적이진 않았다고 합니다. 같이 공연도 했을 정도니까요)

그러나 귀족 오페라의 이러한 행동은 바보 같은 선택이 됩니다.

두 오페라의 싸움으로 인해 런던의 청중들이 양분화가 되어 결국 파산하게 되어버리거든요.

파리넬리를 싫어했던 헨델

오페라가 파산하고 말자 헨델은 오페라를 포기하고 오라토리오 작곡가로 전향을 하게 됩니다.

세네지노와는 다르게 헨델은 파리넬리를 싫어했습니다.(헨델 입장에선 파리넬리가 굴러온 돌이겠죠?)

파리넬리도 헨델을 좋아하지 않아 서로 사이가 좋지 않았다고 하는데 헨델은 파리넬리를 '노래하는 기계'로 혹평을 했다고 하네요. 

(실제로 파리넬리는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미성, 넓은 음역, 엄청난 폐활량을 가지고 있었지만 연기력은 좀 약했나 봅니다. 연기가 굳어있고 장면 효과에 너무 집착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었습니다.)

파리넬리는 1737년에도 몇 차례의 연주회를 계획했지만 몸이 좋지 않았는지 건강상의 이유로 모두 취소하고, 포르포라와 함께 런던을 떠나게 됩니다.


3. 우울증도 치료하는 남자 파리넬리 (의사 아닌가요...?)

※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파리넬리를 가장 유명하게 만든 일화가 아닐까 싶습니다.

파리넬리가 런던을 떠날 시기와 딱 맞게도 1737년 스페인 왕 펠리페 5세의 부인 엘리자베타에게 연락이 오게 됩니다.

당시 스페인 왕 필리페 5세는 조울증을 앓고 있었습니다.

엘리자베타는 펠리페 5세의 병을 음악으로 고쳐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파리넬리를 마드리드로 초청합니다. 

파리넬리는 10년 동안 4곡의 노래를 반복해서 부름으로서 펠리페 5세의 우울증을 치료해버리고 맙니다. (단지 노래만으로요! 이쯤 되니 얼마나 잘 부르는지 궁금해서 꼭 들어보고 싶기도 하네요)


4. 화려했던 삶 , 그리고 그 끝...

이것을 계기로 파리넬리는 왕의 신임을 얻게 되어 펠리페 5세와 , 후계자 페르난도 6세의 궁에서 20년이 넘는 세월을 궁정 가수, 왕실 예배당의 음악감독  등등 여러 가지의 직위를 맡으며 지내는 도중에 1750년에는 기사 작위도 받게 됩니다.

파리넬리는 음악계뿐만 아니라 정치나 외교에 까지 영향력을 발휘했다고 하는데요, 그 때문인지 페르난도 6세를 계승한 카를로스 3세와 정치적 견해가 생기게 되어 궁정음악가 자리를 잃고 스페인을 떠나게 됩니다. 

마드리드를 떠나게 된 파리넬리는 자신에 예전에 사두었던 이탈리아 볼로냐 별장으로 거처를 옮기고,

그곳에서 노래와 시를 쓰거나 작곡을 하며 여생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그의 은퇴 후에도 수많은 음악가들이 그를 방문했다고 하는데요?

※ 작곡가 글루크 , 모차르트, 카사노바, 음악학자 마르티니 신부, 황제 요제프 2세 등등이 그를 잊지 않고 방문했습니다.

1782년 그는 죽기 전에 자신의 재산을 하인들과 가난한 사람들에게 골고루 나누어준 뒤에 조용히 눈을 감습니다.

당시에 볼로냐에 있는 로마 교황청에 묻혔으나 나폴레옹 1세에 의해 무덤이 훼손되었다가 최근에 그의 유골이 발견되었다고 하네요.

그가 남긴 편지들은 볼로냐 대학도서관에 보관이 되어 있다고 하니 파리넬리에게 관심 있는 분은 이탈리아 여행 가실 때

한번 방문해보시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  끝으로....

이상으로 18세기 최고의 카스트라토라고 불리며 신의 목소리라 칭찬을 받았던 파리넬리의 이야기를 마쳤습니다.

어떻게 하면 단순히 정보전달이 아닌 재밌게 이야기로 들려드릴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하는 편인데도

이런 인물을 다루다 보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점점 더 발전해 나가는 이야기꾼이 되겠습니다

다음 포스팅은 파리넬리 편에서 다루지 못한 카스트라토에 대해서 다룰 예정입니다, 감사합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