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인물 이야기

파가니니

by 이야기 좋아하는 남자 2020. 1. 26.

안녕하세요 여러분 이야기꾼입니다~

오늘은 열무_ya님께서 신청해주셨던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 파가니니이야기를 들려드리려고 합니다.

그러면 이야기 시작하겠습니다!


◈  파가니니

 

1. 그의 유년기

 

니콜로 파가니니(Nicoló Paganini)

파가니니는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라 불리며 그 시대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였습니다.

1782년 10월 27일 이탈리아의 제노바에서 한 아이가 태어나게 됩니다. 그의 이름은 니콜로 파가니니였습니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아버지에게 음악의 기초를 배우기 시작한 이 아이는 9세 때 무대에서 자작의 캄파넬라 변주곡을 연주하죠.

그런 천재성 때문이었을까요? 아버지는 파가니니의 재능을 알아보게 되었고 하루에 10시간 가까이 혹독하게 연습을 하게 됩니다.

13살이 되었을 때, 이탈리아의 롬바르디아 지방을 연주 여행하기도 했습니다. 청출어람이라고 하죠?

천재성을 가진 파가니니는 스승님들 전부를 뛰어넘어 결국 혼자 활동을 하게 됩니다.

(어떤 스승님을 만나도 반년 안에 실력을 따라잡았다고 합니다.)

그렇게 승승장구하던 파가니니는 17세 때  성공하게 되고 명성과 부를 얻게 되죠.  (부럽네요, 하지만 오래가지 못합니다)

'자만은 최대의 적이라고 했던가요?' 어린 나이에 성공해버린 파가니니는  돈을 방탕하게 쓰게 되고

도박까지 손을 대어서 거액을 빚을 지고 건강마저 나빠졌습니다.  결국 자신의 바이올린까지 팔아버리고 맙니다.


2. 다시 일어나는 파가니니

 

그렇게 짧게 성공하고 무너진 것 같았던 파가니니는 끈기가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1804년까지 연주회를 열지 않아 사람들에게 이상한 소문이 나있었던 그였지만 사실은 안 좋았던 건강을 회복하고

(한 귀부인과 동거를 했었는데 그 동거녀를 살해하고 그 죄로 감옥에 있다는 소문도 있었답니다)

하모닉스, 중읍 주법, 스타카토 등의 새로운 주법을 연습하고 있었다고 하죠.

결국 슬럼프가 있던 기간을 극복하고 1804년 제노바로 돌아와 그다음 해인 1805년부터 다시 활동을 하게 됩니다.

이전보다 훨씬 뛰어난 실력을 가지게 된 파가니니는 더 높은 명성을 얻게 되었고 그 덕에 나폴레옹의 누이동생에게

초대되어 궁정 악사로 3년 동안 생활을 보내게 됩니다.


3. 파가니니의 전성기

 

1808년부터 1828년까지 20년에 걸쳐 파가니니는 이탈리아 각지에서 연주여행을 하며 자신의 재능을 널리 알립니다.

그의 명성은 이탈리아를 넘어 유럽 각지로 퍼져나갔고 온 유럽의 음악 애호가들은 그의 이름을 존경하는 마음으로 부르게 되었죠.

1828년 그는 처음으로 이탈리아를 넘어 국외 연주 여행을 기획했고 3월 말에 빈에서 했던 연주회가 대박 나게 됩니다.

그 인기가 어느 정도였나 하면 각 상점마다 파가니니 스타일이라고 불려지는 양복,모자 ,구두, 장갑 등등이 엄청나게 생기게 되죠.

바로그 다음 해인1829년 베를린에서  공연마저 대박을 터뜨린 파가니니는 독일을 순회하고 폴란드, 파리, 영국, 등등 가는 곳마다

사람들을 홀려버립니다.  그리고 1832년 5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순회공연을 마치고 이탈리아로 다시 돌아오게 됩니다.


4. 악마라 불리었던 이유

악마라고 불리었던 파가니니

실제로 파가니니의 연주에 많은 유명한 작곡가들이 영향을 받았습니다. 리스트, 브람스 망고레 등등이 있었죠. 

듣는 이들이 거품을 물고 쓰러질 만큼  연주가 황홀했다고 하는데 그중에서도 리스트는 젊은시절 그의 연주를 듣고선

"나는 죽어도 저 사람의 연주를 따라갈 수 없다. 그러나 저 사람이 바이올린을 한다면 나는 피아노로서 파가니니가 되겠다"라고

다짐까지 할 정도였다고 하니 얼마나 뛰어난 연주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나폴레옹의 여동생 엘리자 보나파르트는 그의 연주를 들을 때마다 기절했다고 합니다...)

★ 그는 연주를 할 때  g 현 하나만으로 연주를 하고 활대신 나뭇가지를 써서 연주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바이올린 한대로 오케스트르라의 소리를 모방했고 다양한 동물의 울음소리까지 재현을 해냈다고 하네요. 

(지금도 믿기지 않지만 그때도 그런 사람들은 있었나 봅니다. 하지만 그 사람들마저 연주를 듣고는 인정했다고 하네요.)

전성기 때쯤은 실력이 잘하다 못해 너무 지나치게 되어 악마에게 영혼을 팔고 실력을 얻었다는 루머에 시달리게 되죠.

(이 루머 때문에 교회 무덤에 묻히는데 까지 46년이라는 시간이 걸리게 됩니다)

또 하나의 재밌는 말이 있는데 파가니니 본인이 직접 악마 소문을 퍼뜨렸다는 말이 있습니다.

파가니니의 연주에 감탄한 주교가 그를 하도 귀찮게 하며 "바이올린에 무슨 수작을 부린 것이요?"라고 계속 묻자

짜증이 나서 "내 바이올린엔 악마가 있고 내 활에도 악마가 있고 나도 악마요"라고 말한 것이 소문이 퍼졌다고 하네요.


5. 그의 말년...

 

파가니니의 인생의 전성기는 해외 순회 연주를 할 때였지만 젊은 시절에 걸린 매독이 평생 완치되지 않았고 수은 치료법에 의한

부작용까지 더해지면서 그의 몸은 더욱 안 좋아지게 되었습니다. 후두 결핵까지 걸리고 말아서 목소리도 잃어버리고 말죠.

국 만신창이가 되어 고국으로 돌아온 파가니니는 7개월 동안 앓다가 1840년 5월 27일 눈을 감고 맙니다.

자신이 만들어낸 연주기법을 비밀로 하는 편이었고 자신의 음악을 악보로 남기는 데에도 적극적이지 않았습니다.

제자도 '시보리' 한 명뿐이라 그의 기법 상당수를 소실했다고 하네요.

다행히도 소나타 21개, 카프리치오 24개, 4 중주곡 3개, 협주곡 2개 등 많은 명곡은 남아있습니다.

그중에 카프리치오는 가장 인기 있는 명곡이라고 하네요.


◈  끝으로...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라 불리며 최고라고 평가받고 있는 '파가니니' 그의 음악을 들었던 그시대 사람들이 부러워지네요.

그리고 여담이지만 여럿 전공생들을 울린 장본인이기도 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너무 기교가 현란해서 고생한다고...)

오늘도 새로운 인물을 공부하고 이야기를 들려드리게 되어 좋았습니다. 이야기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