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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소했던 이야기

과거제 (고려,조선)

by 이야기 좋아하는 남자 2020. 2. 6.

안녕하세요 여러분 이야기 꾼입니다~!

오늘은 고려, 조선시대에 있었던 과거제도에 대해서 얘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현재에도 수많은 시험이 있고 그 시험을 이겨내기 위해 많은 공부들을 하고 계신데요?

과연 우리 선조들은 어떤 시험을 치고 어떻게 살아갔을지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겠습니다!


◈ 과거제

조선시대 과거

과거제는 말 그대로 과거를 통해 인재를 뽑는 시험입니다. 중국 수나라에서 시작이 되어 우리나라에는 통일신라 때 788년

'독서 삼품과'라는 형식으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과거제가 시행되었을 때는 고려 시대입니다.

고려 광종은 왕권강화를 위해 힘쓴 왕인데요, 신분제를 통해 관직에 진출하던 호족세력을 견제하려고 하였던 광종은

중국 출신인 쌍기의 의견을 받아들여 과거제를 시행했습니다.

(승려들이 치르는 승과도 있었는데 시험에 통과하면 승려라 하더라도 관직에 진출할 수가 있었다고 하네요)

이러한 광종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고려는 과거를 통한 관직 진출 보다는 음서제도가 더 활발하게 일어나서

타고난 신분으로 관직에 진출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조선 시대가 되어서야 일반적인 관직으로의 진출 수단이 되었죠.


과거의 종류 (문과, 무과, 잡과)

 

조선의 과거제도는 크게 3가지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문과, 무과, 잡과 이렇게 말이죠.

조선은 학문을 중시하는 나라였기에 역시 가장 중요한 시험은 문과였습니다.

 

◎  문과 

 

문과 안에서의 시험은 크게 2가지로 이루어졌습니다.

유교 경전에 대해서 묻는 시험 당시의 정책에 관해 논술하는 시험이었다고 하네요. 

응시생들은 이 중 하나를 선택해 응시를 하면 되었다고 합니다. 단계별로는 소과, 대과가 있었는데

소과에 합격하면 시험에 따라 생원이나 진사가 될 수 있었고, 성균관에도 입학을 할 수가 있었습니다.

소과에 합격한 사람이거나 성균관 유생들은 대과에 응시할 수가 있었는데요? 대과에는 3종류가 있습니다.

초시: 각 지방에서 치르는 시험
복시: 초시에 붙은 합격생들을 서울에 모아 치는 시험 (최종 33인 선발)
어전시: 임금님 앞에서 치르게 되는 시험

어전시에 오르게 된다면 일단 관직은 따놓은 당상이었다고 하는데, 그렇다고 열심히 안 한 것은 아니랍니다.

오히려 과거 성적에 따라 관직 승진이 결정되기 때문에 더 좋은 성적을 내려 노력했다고 하네요.

장원 급제라는 말 많이 들어보셨을 텐데요. 장원은 1등한테 주어지는 이름이었습니다.

장원 급제를 하면 며칠 동안 고향에서 잔치를 벌이기도 했다고 합니다. (3년마다 치르는 것이 원칙이었다고 하네요)


◎  무과

무과도 문과와 마찬가지로 3년에 한 번씩 정규적으로 실시되는 식년 무과와 임시로 특설되는 비정규 무과가 있었습니다.

무과도 문과와 같이 3단계의 시험이 있었는데요. 

초시: 식년 시험이 시작되기 전년도 가을에 실시 (원시, 향시가 있음) 
복시: 식년 봄에 실시
전시(어전시와 똑같다고 보시면 됩니다) : 식년 봄에 실시 

※식년 : 과거를 시행하기로 정한 해를 뜻합니다.

초시의 종류에는 원시 , 향시가 있는데 원시는 훈련원이 주관을 하여 70명을 뽑고 향시는 각 도의 병마절도사가

120인을 선발하였습니다. 복시는 식년 봄에 초시합 격자들이 한성에 모여 시험을 치렀고 최종 28인만 남게 된답니다.

그러나 28인이라는 숫자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훨씬 더 많이 뽑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식년 무과와 다르게 언제 시험이 나올지 모르는  비정규 무과에선 후기로 갈수록 더욱더 많이 뽑았다고 하는데요.

광해군 때 정시 3200명 인조 별시에서 5500명 숙종 때는1만8251명이나 뽑아 만과라는 말이 생겨났다고 합니다


◎  잡과

의과를 표현하는 한약

잡과는  궁중과 6조 지방에 있는 아문과 속사의 관리를 선발하는 분야였습니다. 

잡과에는 고정적으로 시험이 실시되는 분과와 그렇지 않은 부정기과가 있었습니다. 

잡과는 예비시험이 없고 초시와 복시가 끝이었으며, 부정기과는 한 번의 시험만으로도 합격자가 나오기도 했답니다.

지원자들은 단체로 한번 거르는 제도가 없었기에 경쟁률이 어마 무시했다고 합니다.

역과 (외국어, 통역) : 역관을 선별하는 시험 (중국어,몽골어,일본어,만주어)
의과 (의원, 의사) : 의원을 선별하는 시험 
음양과 (천문학) : 지리학, 천문학, 명과학을 연구하는 사람을 선별하는 시험
율과 (법률) : 법률 실무를 담당하는 관리를 선별하는 시험

이 밖에도 부정기과에 선 산과, 서책과, 도화과 등등이 있으며 조선왕조 실록에 요리 실력을 평가하는 잡과와

가축에 관련된 잡과가 실시되었다는 기록을 통해서 꽤나 다양한 기술 분야의 시험이 있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잡과 안에서도 서열이 있었는데요, 역과>음양과>율과>잡과>부정기과 이렇게였다고 하네요.


◎  응시 자격은? 

과거제도에도 응시자격이 있었답니다. 문과, 무과, 잡과 가릴것 없이 양인 이상이면 시험을 칠 수가 있었습니다.

다만 문과는 돈도 많이 들고 부담이 크고 적게 뽑아서 자금이 있는 양반들이 더욱 많이 보게 되었고

양민(일반 시민)들은 보통 무과에 더욱 몰렸다고 하네요.

나중에는 무과의 난이도가 낮아지면서 몰락한 양반, 서자들, 한량들, 면천된 천민까지 응시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과거제도는 그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의 신분을 상승시킬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었습니다.


◈ 끝으로...

오늘은 과거제도에 대해서 알아봤는데요. 요즘보다 더욱더 경쟁률이 심하면 심했지 덜한 것 같진 않습니다.

시험 한번 떨어지면 최소 3년에 거기에 들어가는 비용도 어마어마하고 지방에 살면 서울까지 과거를 보러 가는 비용도 

장난이 아니라서 합격하지 못하고 몇 번 낙방하면 가문의 재산을 탕진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하네요.

옛날이나 지금이나 시험공부는 정말 힘들죠, 오늘도 열심히 공부하시는 분들께 좋은 결과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도 제 이야기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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